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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곡성 (THE WAILING)

감독 : 나홍진

출연 :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김환희, 장소연

정보 :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한국│156분│2016.05.11

글쓴이 평점 : ★★★★ (10점)

 


곡성이 개봉한 후 곡성을 두번째로 관람했다. 첫 관람후 무엇인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머릿속이 이번 두번째 관람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자리가 잡히는것 같아 영화의 의미가 더욱 와닿았다. 분명 영화에서는 현혹되지 말라 강조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은 나홍진이라는 감독에게 현혹된 기분이다.


첫 관람 후 쓴 곡성 리뷰 : http://ssaji.tistory.com/239


영화 곡성의 Key Point는 '의심'이다. 시골 곡성의 경찰 종구는 마을에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을 처음에는 단순한 독버섯에 의한 현상으로만 생각했었다. 종구가 단순한 독버섯에 의한 현상이라고만 믿을때에는 그저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날 뿐이었고 종구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구가 주위 사람들에게 몇번씩이고 일본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제는 일본인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종구의 옆에는 무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명은 일본인이 그런 짓을 벌인 것이라고 종구에게 말했고 귀신의 모습을 한 듯한 일본인의 모습이 종구의 꿈속에 나타났다. 꿈에서 깨어난 종구에게 효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종구는 일본인이 실제로 고라니를 먹는다던지 한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의심을 하는 순간 그 소문들이 종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일본인이 산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차에 치여 죽었을때, 종구는 일본인이 죽었고 그리고 인해 이러한 현상들의 근원이 없어졌다는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순간 의심의 근원이 사라지게 된 종구는 병원으로 달려가게 된다. 효진이는 괜찮아졌다. 하지만 일본인때문이 아닌 무명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일광의 전화를 받게된 종구는 다시 의심의 싹이 트게 되고 효진이는 집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의심의 순간순간 전개가 달라지고 있다.





영화 곡성은 종교적이다. 나홍진 감독은 살다보니 사람이 죽는것에 이유없는 죽음들이 많았고 그로인해 죽음에 관한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저곳 종교들을 찾아가 물어보았다고 하는데, 영화에는 그런 이유없는 죽음에 대해 종교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감독의 생각이 담겨 있는것 같았다. 일본인은 기독교적 악마이다. 기독교적 의미가 들어간건 영화의 처음이 누가복음으로 시작되는것부터 알아차릴 수가 있다. 이 악마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의심으로 발현된다. 사람의 의심이 일어나는 순간 그 사람의 생각 속에 자리잡아 파멸의 단계로 이끄는 것이다.


악마의 기독교적 모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동굴 속 부제와의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차에 죽었음에도 일본인은 동굴 속에서 담요를 덮고 있었다. 부제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그곳을 찾아갔고 일본인에게 악마가 맞냐고 물어본다. 일본인은 그것이 왜 중요하냐고 되묻는다. 여기에서 기독교적 모습이 담겨있다. 일본인은 다시 살아났다. 이것은 다시 살아난 예수의 모습을 떠오르게도 한다. 하지만 부제는 눈앞에 있는것이 정말 악마가 맞는지 의심을 하고 있다. 부제는 예수를 믿는 자로서 기독교적으로 따지자면 악마가 있다는 것도 믿어야한다. 하지만 그가 악마가 아니라면 그냥 내려간다고 하는 모습은 의심을 하고 제대로 믿지 못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악마는 동굴에서 나가고 안나가는것은 너의 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종교를 비꼬는 모습은 성당에서 신부를 만나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본 적이 없는 예수를 믿는 신부이지만 보이지 않는 다고 하여 종구의 말을 그저 무시하고 만다. 이렇듯 이유없는 죽음 앞에서 종교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일광이 일본인과 한 패라는 것은 일본인이 입고 있던 훈도시를 일광도 입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그것에 확신을 하진 못 했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예고에도 나오는 것처럼 곡성은 '현혹되지말라'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현혹되지 않기 위해 무수한 의심의 눈초리로 영화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 점을 감독은 영리하게 이용한 것 같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당의 모습으로 나온 일광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광과 일본인이 살을 날리는 장면에서도 둘이 서로 살을 날리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것은 감독이 그렇게 의도하여 연출한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결말에 이르러서 밝혀지는 일광의 비밀은 꽤 충격적이기도 했고 왜 종구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전화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무명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마을 사람들을 외부에서 온 일본인이나 일광으로부터 지키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수호신으로서 의미는 굿을 할 때 확신을 할 수 있었는데, 일광은 일본인에게 살을 날린다면서 장승에게 못을 박는다. 장승은 보통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일본인에게 살을 날리면서 장승에게 못을 박는건 말이 안된다. 그렇기에 무명에게, 효진이에게 살을 날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것 같다.


무명은 닭이 세 번 울기까지만 기다리라고 종구에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이미 의심으로 가득찬 종구는 그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무명은 그저 믿으라고만 하는데 어떤 증거조차 없는 상태에서 믿음만 강조하는, 어쩌면 종교의 역설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무명의 말대로 세 번 울기까지 기다렸다면 가족들은 모두 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보면 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집들에게는 금어초가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해골 모양으로 말라있었다. 이것은 종구처럼 모두 무명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귀신을 향해 쳐두었던 덫을 의심때문에 스스로 없애버린 결과였을것이다. 만약, 덫이 제대로 발동했다면 귀신을 잡고 모두 살 수 있었을지 않을까. 종구가 마지막에 이것은 모두 꿈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것들이 꿈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중반에서 무명을 만나고, 일본인을 만나고,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처럼 영화는 의심이라는 소재를 통해 영화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일본인에 대한 소문을 듣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외부인들의 시각에서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그저 독버섯에 의한 이상현상들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영화의 내용들을 곱씹을 수록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영화다. 감독은 자신이 내놓은 결말이 있다고 했지만 관객들이 내놓은 결말도 정답이라고 했다. 분명 영화에서는 현혹되지말라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미 현혹된 느낌이다. 나홍진이란 사람한테.



사진 출처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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